상반기에 <어벤져스>가 있었다면 하반기는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개봉은 안했지만 해외 시사회에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다크 나이트 라이징>과 그보다 일찍 먼저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마블보다는 DC에게 먼저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하반기가 더 기다려졌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왠걸!

먼저 모습을 드러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정말이지 제목 그대로 '어메이징'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나에게 약간의 실망감과 엄청난 지루함을 안겨준 영화로 기억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 악평을 하고 싶지도 않은 이유에 대해 약간의 할 말을 만들어보자면 그래도 리부트 영화로서 개성은 살렸다는 것 정도 될 것 같다. 샘 레이미가 아닌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토비 맥과이어가 아닌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는 어떤 모습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이것은 스파이더맨에게 꽤 큰 애정을 품고 있는 팬으로서 가질 수 있는 어떤 아량 같은 거랄까. '스파이더맨은 샘 레이미와 토니 맥과이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해요' 가 아니라 '조금 다른 이미지라도 좋으니 스파이더맨은 오랜만에 또 만나보고 싶거든요.' 였으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라는 타이틀은 어째 영화를 깎아내리는 모양새다. 영화는 이전 시리즈에서 다루지 않았던 피터 파커와 부모님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고민이라는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로 나아간다. 원치 않았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 그야말로 '어메이징'한 능력을 갖게 된 피터 파커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한다. 이 넘치는 능력을 유기농 달걀을 사오는 데만 쓰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무선망을 도청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뉴욕을 지키겠다며 온 동네를 휩쓸고 다니는 왠 '돌아이'의 등장은 경찰에겐 놀라우면서도 여간 신경이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시리즈들과 비교하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보여주는 피터 파커의 모습은 조금 가볍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벗어던진 것도 아니다. 자신이 못본 체 했던 강도가 삼촌을 죽게 만든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피터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어메이징'한 능력으로 범인을 찾으려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삼촌의 죽음은 철없이 날뛰던 '워너비 히어로'를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게 하는 일종의 계기가 된 셈이기도 하니까.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이른바 '루저'였기에, 그래서 변신 전과 후의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면 애초부터 아버지의 연구 공식도 척척 풀 만큼 천재적인 두뇌를 갖춘데다 생긴 것도 이 정도면 꽃미남인 적당한 외모를 갖춘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는 느낌부터 다르다. 둘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실제 연인인 엠마 스톤과 함께 연기해서인지 더욱 달달하게 느껴지는 멜로의 감성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갖춘 비장의 무기랄까.

'500일의 스파이더맨'이라는 말이 그저 웃고 넘기기엔 살짝 '뼈'가 있는 것 같게 느껴지는 건 분명 있다. 정체성도 고민해야 하고, 여자친구와 달달한 로맨스도 해야 하고, 악당 '리자드'와 맞서싸워 세상을 지켜내기도 해야 하고 영웅 피터 파커의 삶은 하루하루 고달파서일까. 정작 관객들이 3D 안경을 쓰고 물개박수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 한 방을 보여주는데 참 시간도 오래 끈다 싶다.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은 분명 곳곳에 들어있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어메이징'한 거 없이 끝나는 건가 하염없이 기다리던 찰나에 등장한 고공 활강 씬은 3D로 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유일하게 든 장면이기도 하다. 뉴욕 야경을 뒤로하고 거미줄을 뽑으며 이 건물에서 저 건물, 이 크레인에서 저 크레인으로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역시나 물개박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비록 크레인기사들이 결의에 차 하나같이 스파이더맨을 도와야 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조금 오글거리긴 했지만. 영웅을 위해 야근 따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의리는 높게 봐줘야지.

아무튼 돌아와줘서 반갑고, 속편을 암시하는 영상을 보면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기대하게 해줘서 고맙고. 영화를 보고 한 동안 스파이더맨에 빙의되어서 여기저기 손목을 내밀며 '쉭쉭' 거리며 놀 거리를 만들어줘서 고맙고. 나름 섬세한 감정변화가 돋보인 리부트 영화로 그 성격을 완성시킨 것 같아 이 정도면 만족스럽게 느끼게 해줘서 고맙고. '그렇지만' 난 너무 가벼워진 스파이더맨이 영 어색하고. 이건 너무 심심한 것 같고. 난 히어로들은 좀 더 고뇌에 찬 모습으로 사는 게 더 멋진 것 같고. 


  • 내 맘대로 평점 : 7.0 / 10.0 만점
  • 내 맘대로 영화의 평 : 그래도 난 '다크'한 스파이더맨이 더 좋더라.'달달'한 스파이더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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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ebonycrystal/130142277174 BlogIcon 여행노동자 2012/07/11 20:05

    1. 전 좀 가벼워진 스파이더맨이 보기 좋았어요. 아, 이건 아무래도 앤드류 가필드를 향한 무한애정에서 비롯된 사심일 가능성 99.9% 알고 보니 이 배우를 제법 즐겨 찾았더라구요. 보이A, 페이스북, 그리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네버 렛미고까지 봤으면 완벽한 관람이력인데;
    2. 전 3D, 아이맥스 울렁증이 있어서 그냥 작은 상영관에서 디지털로 관람했는데,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는? (과도한 액션 울렁증 환자의 한계;;)
    3. 500일의 스파이더맨 ㅋㅋ 500일의 썸머 감독이 이런 액션 영화도 연출하다니, 하며 놀라긴 했는데. 생각보다 못하진 않았잖아요? ㅋㅋ
    4. 토니 맥과이어는 누규...? (토비 맥과이어 라고 하는군요.)
    5. 환유씨는 페이스북 연동 댓글 설치하실 계획 없으신가요 ☞☜

    • Favicon of http://hwanyou.net BlogIcon 환유 2012/07/11 23:16

      1. 보이A와 네버렛미고를 못봤네요. 가벼워진 스파이더맨도 좋긴 했어요. 그치만 얘는 너무 천재 캐릭터라 질투나서 그랬나? ㅋ
      2. 음. 이거 아이맥스3D로 봤으면 좀 실망했을 거 같아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았으면 좀 볼 맛이 낫을텐데 그런 면에선 좀 아쉬웠거든요.
      3. 기대반 걱정반이었는데, 이 정도면 꽤 개성있는 스파이더맨이 나타난 거 같아서 좋아요.
      4. ㅋㅋㅋ 어제 새벽에 졸다가 썼더니 오타가!! 설마 제가 토비 맥과이어를 모르겠어요? ㅋㅋㅋ ㅠㅠ 그치만 오타는 오타이므로 부끄러움을 좀 타겠어요.
      5. 페북 연동댓글. 아. 그거. 좀 지저분해 보여서 뺐었는데 다시 설치 고려하겠어요!!!

  2. Favicon of http://sinnanjyou.tistory.com BlogIcon 제이유 2012/07/12 06:16

    영화를 안 봐서...ㅎㅎ 이전 작품들하고는 많이 다를지 궁금하네요.
    그러나...사실 스파이더맨보단 시사회평이 엄청난 배트맨이 더욱 기대될 뿐 ㅎ

    • Favicon of http://hwanyou.net BlogIcon 환유 2012/07/12 10:39

      조금 똥꼬발랄해졌어요.^^ 나쁘지 않다는.
      스파이더맨<배트맨....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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